역사 이야기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상에 대해 알아보자.

수촐스 2022. 3. 28. 16:37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사진으로 봐서 알고 있는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마애 삼존불상. 
이 불상은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불상으로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태안 마애불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백제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백제인들의 독특한 수법으로 조각되고 표현된 특유한 부드러움과 세련된 조각미와 불상의 온화한 미소는 ‘백제의 미소’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죠.

 

오늘은 마애불은 무엇인지,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조성배경을 통해 백제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상

1. 마애불이란 무엇인가?

 

절벽의 바위면이나 거대한 바위면에 선각이나 돋을새김기법 등으로 어떤 주제나 내용을 형상으로 새긴 것을 마애 조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마애조각은 크게 선사시대의 바위 조각과 불상을 주제로 한 마애불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마애불의 특징을 살펴보면 마애불은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들 때부터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부분이죠. 그러므로 이동할 수 있는 조각과는 달리 확실하게 당해 지역의 조각 작품임이 명백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마애불은 조각의 유파 연구나 국적 연구에 있어 가장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불상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므로 어느 사회의 소산이냐에 따라 불상의 성격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마애불은 이런 점을 가장 잘 반영하는 불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마애불이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인도 석굴 사원의 벽면에 새긴 불상이 시초입니다. 중국의 서안일대에도 맥적산 석굴이나 장안의 각 감실에 마애불들이 많이 조성되었습니다.  마애불이 우리나라에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로 전국적으로 많은 수가 산재되어 있습니다.

 

2.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조성배경

 

서산 마애 삼존불상은 1959년 처음으로 발견되어 600년 전후의 백제불상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가야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가야산은 예산 및 해미와 서산의 접경지대에 상왕산과 연이어 있는 서해의 명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의 소위 인 바위로 불리는 거대한 바위의 중복면에 서산 마애삼존불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지 않으면 마애불이 보이지 않아서 오랫동안 이 지역 사람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산과 태안지역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중국 산둥반도를 연결하는 해로상에 가장 인접한 곳으로 백제의 중요한 거점 지역의 하나였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하여 5세기 후반 백제가 웅진으로, 그리고 다시 사비로 천도한 이후에는 지역적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산, 당진 지역은 일찍이 중국 남북조를 비롯한 다른 지역과 해외교통의 중심지로 타 지역에 비하여 불교문화의 전래와 정착이 선행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전파는 현재 당진, 태안, 서산, 예산, 홍성지역에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불교유적과 고분, 산성 등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서산 마애 삼존불상이 위치한 지역은 해양과 내륙을 이어주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불력을 통하여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호국적인 의미에서 조성되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백제시대의 성왕, 위덕왕, 무왕 세 명의 왕이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중반에 걸쳐 집권하면서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으며 불교문화를 보다 화려하게 꽃 피우게 됩니다. 이는 불교를 통해 정치와 사상을 통일함으로써 보다 강력한 국가를 이룩하려 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런 불교의 발전 속에는 백제의 계율의 중시와 미륵신앙을 대표로 하는 백제불교의 발전 양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백제 불교문화를 잘 반영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마애불 형식인 서산의 마애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산 마애 삼존불상은 백제의 대표적 불상으로 깊은 역사와 신앙의 배경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성의 배경이 명확하게 해명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3. 서산 마애삼존불상 양식

서산 마애 삼존불상을 살펴보면 본존상은 여래입상이고, 왼쪽은 반가사유상, 그리고 오른쪽은 배 앞에서 두 손을 아래위로 하여 보주를 들고 있는 봉보 주보 살 입상입니다.


서산 마애 삼존불상은 백제 특유의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적 힘이 잘 조화된 유연하고, 세련된 백제 양식을 완성하였습니다. 아울러 독자적인 삼존불의 도상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즉, 다방면으로 백제 미술의 독창성을 표출하고 있는 거죠. 
이 마애불들은 이와 같은 예술의 완성이 당시 새롭게 전해진 중국의 북제나 수대 불상 양식의 영향과 앞 시기인 6세기 이래의 남조 불상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제는 중국 불교문화의 자극을 받아 세련되고 고전적인 백제 고유의 불교문화를 이룩하였고, 그 단적인 예가 서산 마애 삼존불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보다 실제로 불상을 직접 보면 조각의 섬세함에 놀라실 겁니다. 그리고 해의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불상의 얼굴 표정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는 불상의 균열이 계속되면서 보수가 시급한 것으로 알려져 이제 더 이상 불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빨리 문화재 보호를 위한 보수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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